소하 건축사사무소
건축문의
남에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과 감추고 싶은 마음 사이에 서서 좋은 집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워 뽐내지 않아도 폼이 나고 수수히 서있어도 격이 느껴집니다. 남들을 의식하는 마음과 따라 하고픈 마음 사이에 서서 좋은 집은 나에게 충분히 이쁘고 사랑스러워 손님을 맞이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혼자 앉아 있어도 따스함이 어깨를 감싸곤 합니다. 그런 집이면 충분합니다.
집을 지을 때 건축주는 인테리어 비용 때문에 고심하고 건축가는 면적 때문에 고민하고 시공자는 하자 때문에 머리 아프지만 걱정은 원래 드는 것이기에 나누어 드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풍경을 담은 집에서 가족과 웃으면서 식사하는 상상을 하는 건축주와 곳곳에 숨겨진 공간에 담길 삶의 모습에 흐뭇해하는 건축가와 작은 것이라도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면서 보람을 느끼는 시공자가 함께한다면 힘겨움도 즐거움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소나기가 지나가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반겨주는 집이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집은 넓은 거실에 들어가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기 위해 가로 얼마 세로 얼마의 거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집과 만나는 사람의 정서에 따라 살기 위한 배경이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고, 좁다가 넓어지기도 하고, 나무로 둘러싸이다가 하늘로 열려있기도 하는 것이다.
며칠전 건축상담을 하면서 주택에서의 삶의 이야기를 잠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세련된 것보다는 자연스런 멋스러움, 자극적이지 않은 느린 풍경의 삶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건축을 통해서 인식하고 영향을 받는 사람의 정서가 사람을 멋스럽게 만든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도시속에서 별개로 구분하고 성적순으로 나누고 번호표를 매기는 삶의 정서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풍부하게 때론 다양하게 즐거움을 주는 건축이 사람과 주변과의 관계속에서 나름의 정서를 만들고 그 건축안에서 여러가지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가 건축을 대하는 생각과 방식이 조각물을 만드는 것이라면 사람을 위한 집이 아니다. 거주자가 건축을 대하는 생각과 방식이 얼마짜리 집인데…. 라고 생각한다면 집에서 사는 의미는 없다. 불편함이 즐거움으로 의미 없는 공간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완성되는 것은 건축가의 일이 아니다. 건축가는 여지가 있는 장소를 제공할 뿐 집과 만나서 완성하고 점점 키워내는 것은 거주자의 삶이 하는 것이다. 집과 사람이 만나서 점점 자라나는 집이 좋은 집이다. 왼손은 거들뿐….
집에는 수납이 많으면 좋다. 그렇다고 수납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아니다. 수납 속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버리는 것과 정리하는 것에 대한 원칙도 가져야 할 것이다. 집은 욕심과 편리를 위해 남겨진 유실물 창고가 아니다. 결국,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가? 내가 집에서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수납도 필요하고 정리도 필요한 것 아닐까? 추억을 담고 삶이 더 쌓이는 집을 위해 빈자리를 마련해 보자.
건축은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건축가는 대지를 분석하고 환경을 고려하며, 건축주의 요구 조건을 해석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서 수없이 고민하며 모형과 3D 툴을 이용해 공간감과 비례감을 찾고 사람과의 관계, 도시과 주변환경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큰 개념에서부터 작은 디테일, 재료와 색상, 가격까지 비교해서 어느 순간 직관적으로 디자인한다. 건축은 그래서 단순해 보인다.
건축은 항상 주변으로 열려있다. 건축은 풍경이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삶은 인간 활동의 변형된 역사이고 시간은 삶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기억하지만 결국엔 공간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늘 공간과 관계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공간의 틀 안에서 기억된다. 자신의 삶은 건축공간의 풍경 속에서 일어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삶은 건축과 관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건축 예찬이다.
건축은 물리적인 공간에 인간이 살기 위한 장치이다. 그리고 건축의 공간에서 살면서 발생하는 공감각적이고 직접적인 현상과 다양한 사건의 기억 속에서 인간은 건축을 인식한다. 공간과 사람의 관계에서 인간은 거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초기의 중정 안을 마음에 두고 있던 칸은 바라간에게 나무를 세울지 조각상을 세울지에 대한 조언을 구한 일화는 건축계에서는 유명한 일화이다. 결국 바라간의 조언대로 아무것도 세우지 않은 솔크연구소의 마당은 신의 한수라고 일컬을 만큼 훌륭한 선택이었다.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고민이 선택되어진 결과이다. 우리는 모두들 답만 찾아서 선택하려고 하는 제도교육의 목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네 가지 중 세 가지를 포기해야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틀에 매여 사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선택해야 하는지 보다 빨리 선택하고 다음 문제 풀어야 한다는 관념 속에 생활하고 있기에, 두 가지를 선택할 수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노트를 꺼내면 옛 기억에 미소짓게 되는 습작이 있다. 지어지지 않고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도 열중했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힘든 시간이 되면 잊혀 가는 나의 꿈들이 생각날까?
겉으로 단순한 박스로 보이거나 오피스처럼 보이는 건물이 내부에 다양한 공간의 확장과 시선의 연결이 연속되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반전의 매력이 느껴진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들어왔다가 놀라는 순간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린다.
사람은 도시에 살면서 점점 자연을 그리워한다. 자연과 함께 사는 여유 있는 삶을 꿈꾸며 동경하지만 실제론 편리한 도시의 삶에 익숙해져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자연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초록의 나무를 볼 수 없다면 등지고 있어도 좋다. 사계절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자연을 뒤에 두고 내가 그 앞에 자리 잡고 포즈를 취해보자. 등지고 있어도 자연은 도망가지 않는다. 늘 한결같이.
리듬감 있는 공간은 자연스레 외부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억지로 감추어 반전의 묘미를 보이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나 있는 그대로 공간의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말자. 내 안의 마음이 보인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 그대로 나의 모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공간을 드러내면 안에서도 더 강하게 느끼고 춤출 것이다. 자 이제 리듬에 몸을 맡기자.
건축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시간을 담는다. 공간은 시간을 담고 건축은 사람을 닮는다. 다붙어진 하나의 덩어리를 여러 개로 나누고 건축은 그사이의 공간을 만든다. 사이의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공간이 된다. 공간은 그렇게 시간을 담고 건축은 그렇게 사는 사람을 닮아간다.
반복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건축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유니트의 반복과 그 안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전체안에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같이 사는 즐거움도 모여살기에 느낄 수 있는 가치이건만 이젠 그 본질이 변질되어 모여서 따로 살기가 되어 버린건 아닌가 싶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위해 같이 모여사는 집을 꿈꾼다.
계획을 진행하면서 새삼 또 느끼게 된다. 작은집은 작게 큰집은 크게 공간구획을 하는 것이 좋다. 그 안에서 상대적인 공간감을 대비 시켜 극대화하는 기법을 쓰기도 한다. 그때마다 필요한 게 정의되지 않는 공간이다. 복도이기도 하고 서재이기도 하고 윈도우 시트이기도 하고 차경장소이기도 하고 수납공간이기도 하며 아래층과 소통의 장소로 쓰일 수도 있고 아래층에서는 오브제로 보이기도 하는 멀티라고 하기엔 너무 복합적인 공간이며 공간과 공간사이의 공간이 부정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건축이 일어난다.
좋은 장소, 좋은 디자인, 좋은 건축가가 만든 좋은 디자인의 아름다운 건축을 만들어도 때론 누수 때문에 1년 만에 재시공되기도 한다. 페이퍼 아키텍처를 실제로 구현시키는 현장의 힘을 결코 무시하면 안 될 것이다. "사건은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야. 현장에서 일어나는 거야!" -춤추는 대수사선 중에서
평면작업 중에 문득 화상(?)이 떠올라서 단순하게 손가는 데로 그려보았다. 원판은 너무 많은 선이 복잡하게 깔려있는데 그 선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남기고 싶어졌다. 계획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과정에 남은 흔적일 뿐이지만 잠깐이나마 이뻐 보이기도 한다. 또 몇 시간이 지나면 또 뒤집어서 사라질 운명이지만, 혼자만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우습지만 이 순간엔 네가 제일 이쁘다.
하나의 요소에 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를 담고 단순하게 만드는 일은 언제나 고된 노동이다. 힘들고 지치고 나약해 지지만 단순하게 보이지만 복합적이고 기능과 의미가 가득 찬, 그리고 아름다움이 찐하게 배어 나오는 천재들의 결과물은 언제나 의욕을 불태우게 한다. 자 이제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건축을 처음 접할 때 형태가 건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공간을 알게 되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점점 건축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관심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깊이와 레이어, 색, 그리고 중요한 재료를 주의 깊게 보다가 디테일이 건축이 완성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디테일만 보기도 했다. 한동안 그 안에 사는 삶에 더 관심을 가지던 시기를 지나고 요즘엔 이런 걸 다 포함하는 건축은 결국 형태와 공간인가 싶다. 또 한 번 열병처럼 지나가겠지만 계속 순환할지도 모르겠다. 복고 열풍인가… 보다.
처음 집에 들어갈 때의 기분과 사는 집에 들어갈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남의 집에 초대받아서 갈 때의 설렘과 내가 사는 집에 갈 때의 편안함은 사뭇 다르다. 처음엔 조금 낯설어 부담이 되기도 하겠지만 잘 디자인한 집은 살면서 좋아지는 집일 것이다. 사실 사는 사람이 익숙해져서 좋은 집이 더 디자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집과 함께,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 대한 디자인 고민은 더해도 더해도 과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집에 처음 들어갈 때 기분은 말로 표현 못 할 것이다.
비움에 대한 의미는 채우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워진 곳에 빛이 내려왔다가 도망가고 바람이 지나가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있어도 마냥 즐거움을 주는 비움이 얼마나 고마운가?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항상 어둠 속에서 있다고 우울해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 드러나는 법이고 밝고 어두움은 서로 상대적이기에 건축은 어두운 공간을 만들어 밝고 따스한 공간이 더 소중하게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남들보다 더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남들과 다르다는 차별성은 때론 우월감을 주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르다는 것이 뛰어날 수도 있지만 튀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가끔 평범함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힘이 더 강하게 느낄 때도 있다. 드러내지 않고 묻히는 듯 서서히 주변과 하나가 되면서 묵묵히 그 자기 모습을 지키는 건축이 시간이 지나도 좋은 건 천성일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높다고 실력이 높은 건 아니기에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에 또 아쉬운 하루가 간다.
남을 이야기 하긴 쉽지만 나를 이야기 하긴 어려운 법이다. 풍경을 보고 좋다 나쁘다 말하지만 그 풍경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늘도 겸허하게 자연 앞에 고개 숙인다.
눈 오는 날 한옥이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좋은 집은 한 계절 한순간만 좋은 집이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점점 좋은 집이 정말 좋은 집이 아닐까 한다
좋은 집은 가족을 생각하는 집이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관심사가 다양해지면서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집의 역할도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족이 행복하고 즐거운 집을 원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따뜻한 집에 모여 함께 이야기하면서 사는 것, 기본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좋은 집의 첫 시작이며 마지막일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 신경쓰고 좀더 튼튼하게 한번 더 못질하고 나서기전에 한번더 둘러보고 노력하는 현장소장님에게 디자인에 맞게 시공해달라고 어색하지 않게 시공해달라고 좀더 좋은 질로 시공해달라고 잘못된거 다시 시공해 달라고 도면에 표기되지 않았어도 알아서 잘 시공해달라고 매일매인 조르고 또 조르는 나는 때론 고집쟁이 할아버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깊이를 만드는 것은 시선을 따라 가게 만드는 구도이다. 깊이를 만드는 것은 목표를 향한 노력과 인내의 흔적들이다. 깊이를 만드는 것은 삶의 무게를 담담히 지고 나의 길을 가는 뒷모습이다. 깊이는 말하지 않아도 서서히 따라오는 거북이 같다.